2024 그랜드피스투어 1기 류지원
[생태평화] 질문을 담은 여행: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동물 실험은 정당한가?
밸브를 연다. 가스가 새어 나오는 소리가 조용했던 실험실의 적막을 깨고 흘러나온다. 케이지의 벽을 누군가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30초나 흘렀을까. 조용해진 그들을 제차 확인하며, 이내 밸브를 잠근다. 실험실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오늘도 나는 10마리의 쥐를 죽였다. 아니, 안락사를 시켰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지난 1년 하고도 10개월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거의 매주 해오던 예삿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예삿일이다.
LMO, Living Modified Organism은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의미한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입맛에 맞게 유전학적으로 계량되고, 변형된 생물체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밥을 주고, 약물을 투여하고, 실험을 하며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더 자세하게는 그들의 희생에 기대어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다.
‘비싼 의료기기 사용료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위해 효율적인 의료기기를 만들어서 시장에 선보일 작정이다. 그리고 약 5년 전, 의료기기 창업팀을 운영하며, 그 최종 목표를 향한 서두를 놓았다. 하지만 의료기기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개발하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제품 출시를 위해서는 인허가부터 임상실험, 생산 공정 인증 등 다양한 스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FDA 승인을 받으려면 학술적 입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단보조용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우리 팀은 투자 제의도 받았고, 모두가 알만한 기업으로부터 후원도 든든하게 받고 있었지만, 지식의 한계와 전문성의 부족을 인지하며 팀원들과 합의 후, 창업팀을 중단하였다.
이후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다음 방점은 연구실 인턴이었다.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연구하고, 진단 보조용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실에 들어갔다. 재밌었다. 창업팀을 할 때는 협업하기 어려웠던 상급종합병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좋은 저널에도 논문을 실었다. 연구실 생활을 2년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학부생이었던 나에게는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의 삶에 공헌하고 있다는 뿌듯함과는 별개로 늘 마음속에 잔여하고 있었던 하나의 질문이 서서히 응어리지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동물 실험은 합당한가?”
어릴 때부터 인간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더 건강한 삶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의공학 연구는 나에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고, 이 길을 걸어감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 동물실험을 시작하면서, 확고했던 나의 생각에는 균열이 조금씩 생겼다. 특히 수많은 생명들을 내 손으로 죽이는 과정에서, 어린 생명일수록 목숨이 질기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을 살리고자,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자 의공학 연구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들을 마주하니 마음 한편에 응어리가 생겼던 것이다.
찰스 다윈은 신학과를 졸업한 후 비글호에 탔고, 진화론을 발견할 당시 시대상에 가져올 파장을 염려하던 박물학자였다. 그는 비글호와 함께 남미 대륙을 돌고 에콰도르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핀치새를 보고, 같은 종이어도 살아가는 지형과 주요 먹이에 따라 형태가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시대상에 가져올 파장을 고려하여 바로 논문을 발표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롬복으로 떠난 그의 제자인 월리스가 보낸 생물지리학에 관한 편지를 받고,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까지는 고뇌했던 20년의 세월이 있었다. 시대상과 반하는 자신의 연구와 생각을 검증하고, 가치를 입증하기까지의 번민했던 시간들, 나는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고작 갈라파고스를 간다고 그것을 이해할 리가 만무했지만, 그 생각의 씨앗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품은 질문에 대한 답은 못 찾더라도, 어렴풋한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는 갈라파고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외딴섬에 있는 공항, 이구아나가 걸어 다니는 도로, 바다로 뛰어드는 한 무리의 새들, 거리에서 자고 있는 바다사자까지. 수일을 스탑오버하며 도착한 갈라파고스에는 그간의 피로가 무색하게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동식물이 가득했지만, 그들은 어색함이라고는 모르는 듯이 조화롭게 어울려있었고, 꽤나 균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균형에는 인간이라는 동물도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서 인간은 생태계 교란종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보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행복한 경험도 많이 쌓았지만, 왕복하는 시간이 길었기에 오랜 기간 머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에 가지고 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동물실험이 합당하냐고 한다면,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단언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각자의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각각의 종이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방식대로, 나름의 위치에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생태계에서의 그 과정은 결코 합리적이거나, 공평하거나, 공정하지 않다. 때로는 스스로의 이윤과 당신 집단의 평화를 위해 합당하지 않음을 무릅쓰고 그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당신으로 인해 불합리함을 겪은 그들을 가슴에 품고 인지하며 정진하는 것이다. 필연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감사함을 느끼며 나아갈 때에,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발자국은 평화를 향하고 있으리라 감히 믿는다.
찰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그 서사의 종지부를 찍고 있다.‘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단순한 시작에서부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장엄한 생물에 대한 그의 시각처럼. 비록 지금은 단순한 고민, 단순한 꿈에 불과할지라도 그 끝에는 한계가 없길 바라며, 지난여름 회고를 마친다.
글/사진 류지원 (2024 그랜드피스투어 1기 선발자, 생태평화분야)
추가 영상 및 전시사진 자료: 2024 GRAND PEACE TOUR